창조론자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 중에 '소진화는 가능하지만 대진화는 불가능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은 '진화는 절대로 불가능하다'에서, 더이상 부정할 수 없는 진화의 증거가 발견되자 결국 한발 후퇴한 주장이긴 합니다.대부분의 창조론자들이 주장하기를, 소진화는 같은 종 안에서의 분화(즉, 종이 아닌 아종亞種으로 분화되는 것), 대진화는 종 자체가 분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이더군요(창조과학회 참조). 다만 창조과학회에서도 '종의 정의'에 대해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종(種:Species)이란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겠군요. 생물학적으로 종이란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1. 짝짓기가 가능하고 2세가 탄생할 수 있어야 한다.2. 태어난 2세 역시 생식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물론 단성생식을 하는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생물학에서 정의하는 종의 정의입니다.
하지만 고리종의 보기에서처럼 이미 소진화의 누적이 종의 범위를 넘을 수 있다는 보기가 버젓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그렇게 분화해 봐야 그것들은 어차피 갈매기고 솔새고 도롱뇽일 뿐이다, 그것도 소진화에 불과하다'라고 외치는 창조론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하는군요.하지만 그 전에 저 위에서 봤던 '종의 정의'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 종류의 버들솔새는 번식을 하지 않는 완전한 별개의 두 종(Species)이면서, 한편으로는 번식가능한 아종들의 연결로 이어져 있습니다.그러므로 '종의 정의'를 바꾸지 않는 한 고리종은 '종의 분화의 과정', 그리고 '종의 분화의 증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진화의 영역을 종(Species)이 아니라 속(Genus)까지 확대해야겠죠. 그런 식으로 속에서 과(Family)로, 다시 목(Order)으로 소진화의 영역이 계속 확대될 것입니다.
진화론 이야기 - 종의분화, 그리고 고리종
다음과 같이 ㄱ~ㅎ까지 14개의 섬이 있습니다. 여기서 ㄱ섬에만 한무리의 새들이 살고 있습니다.
저 새들의 일부가 옆에 있는 섬(ㄴ, ㄷ)으로 이주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섬에 맞도록 (창조론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약간의 '소진화'를 이룹니다.
이것은 소진화이기에 ㄴ섬의 새들과 ㄱ섬의 새들, ㄷ섬의 새들과 ㄱ섬의 새들은 짝짓기가 가능하고 역시 생식능력이 있는 2세를 낳습니다(한마디로 변화는 있었지만 같은 종입니다).
다시 ㄴ, ㄷ에 있던 새들의 일부가 각각 ㄹ, ㅁ으로 이주합니다. 마찬가지로 약간의 '소진화'가 일어나지만 원래섬의 새들과는 역시 짝짓기가 가능한 '같은 종'입니다.
이러한 일이 계속되어 14개 섬이 모두 새들로 가득 찹니다. 그리고 마지막 ㅎ섬에는, ㅌ섬에서 옮겨온 파랑새와 ㅍ섬에서 이사온 빨강새가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파랑새와 빨강새는 더이상 짝짓기를 하지 않습니다. 인공적으로 수정을 시킬 수도 없습니다. 즉, 파랑새는 바로 옆의 ㅌ섬의 새들과, ㅌ섬의 새들은 그 옆의 ㅊ섬의 새들과... 아종(亞種:Sub Species) 사이의 관계지만, 한바퀴 돌아서 다시 만난 파랑새와 빨강새는 아예 다른 종(種:Species)의 관계가 되고 맙니다.
이러한 것을 고리종(Ring Species)이라 합니다.
이 상태에서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나, ㅎ섬만 남기고 모든 섬이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고 해 보죠.
처음에 ㄱ섬의 한 종이었던 새들이 ㅎ섬의 두 종으로 종분화가 완성되었습니다.
위 내용은 간략하게 예를 든 것 뿐이지만, 실제로 이러한 고리종의 보기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시베리아 중부에 서식하고 있는 버들솔새(Greenish warbler)도 고리종의 대표적인 보기입니다.
시베리아 중부 삼림에 버들솔새의 두 종류, viridanus와 plumbeitarsus가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래 그림과 같이 겉모습도 다르고 울음소리도 차이가 있습니다(사진출처에 가보면 실제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같은 속(屬:Genus)에 속하지만, 서로 교배를 하지 않는, 말하자면 별개의 두 종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티벳고원을 둘러싸고 분포하는 다른 버들솔새들과 고리종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viridanus로부터 티벳고원을 남쪽으로 돌아가며 만나는 버들솔새들을 살펴보면 특별히 눈에 띄는 종의 경계 없이 순차적인 변화를 보이며 plumbeitarsus까지 연결됩니다.
1938년, Ticehurst(본문에는 Ticehurst라고만 되어 있는데 Claud Buchanan Ticehurst인듯)은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습니다.
예전에 버들솔새들은 그들의 영역 남쪽에 살고 있었다. 그 후 그들은 북쪽을 향해 두 방향으로 확장하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기 시작하였다. 그 두 경로가 마침내 중앙시베리아에서 만났을때, 그들은 서로 교배되지 않을만큼 달라져 버렸다.
이후 버들솔새들의 유전자를 분석해본 결과는 Ticehurst의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즉 위에서 제가 간략하게 들었던 보기가 그대로 진행된 것이죠.
여기서도 어떤 이유로 인해 티벳고원 남쪽의 버들솔새들이 멸종한다면, 결국 고대의 한 종이 두 종으로 종분화가 완성될 것입니다.
고리종에는 이러한 버들솔새(Greenish warbler)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북극 주위에 사는 재갈매기와 북미대륙 오레곤주와 워싱턴주에 걸쳐 분포하는 도롱뇽 Ensatina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진화의 누적이 결국 종간의 벽을 넘을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고리종에 대한 다른 예로 김유생님의 블러그에 있는 재갈매기를 추가자료로 붙입니다.
http://blog.naver.com/dinodigs3/20109698197
창조설의 '교리' 중 하나로 "종은 고정되어 있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창조론자들은 "하나님이 종을 뿅하고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라는 옛날 옛날 어느 한 옛날에 중동에 살았던 괴팍한 유목민족의 신화에서 나온 명제를 참이라고 굳게 믿고있죠.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새로운 종은 탄생하지 않습니다. 창조주가 다시 힘을 쓰지 않는한 종은 다만 멸종할 뿐입니다.(이를 더 확장시켜서 "그러니까 생물 종을 보호하자"라는 훈훈한 주장도 하더랍니다) 종과 종 사이의 경계는 뚜렷하며 그 중간이란 전혀 있을 수 없죠.
물론 창조론자-지적설계론자들은 '종'이라는 단어를 애매모호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어요. 특히 창세기에 명시된 종류(kind)와 생물학적 의미의 종(species)을 의도적으로 섞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광을 보내기 위한 일종의 준비작업으로써 일단 창조설자에게 "종을 정의해보라"라고 말해야지요. 만약 고등학교 생물도 핥아보지 못해서 우물쭈물한다면 그냥 까버리면 되지만, 아마 대부분의 창조설자들은 네이버 백과사전이라도 찾아서 "종의 정의로서는 개체 사이에서 교배가 가능한 한 무리의 생물로서 더욱이 다른 생물군과는 생식적으로 격리된 것"이라는 매우 교과서적인 정의를 댈 것입니다.
그러면 게임은 끝난겁니다.
사실 많은 분들은 품종개량 된 '가축'을 예로 들면서 이를 반박하고 있습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그다지 좋은 예가 아니라고 봅니다. 개를 예로 들어볼까요? 개에는 요크셔테리어부터 로트와일러까지 늑대와는 물론, 같은 개들끼리도 형태적으로 이종으로 보일 만큼 다르지요. 그러나 개는 늑대와 교배가 가능한데다가 아직까지 회색 늑대의 아종으로 분류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늑대와 모든 개는 같은 종입니다. 창조론자들이 트집 잡기에 딱 좋은 거지요. "개는 모양이 어떻게 변해도 결국 개다!" 이런 식으로요. 뭐 치와와같은 소형견과 세인트 버나드같은 대형견의 교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시험관 강아지(?) 같은 걸로 될 수도 있을 지도 모르죠. 그러나 이런 실험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네요.(혹시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참으로 쓸모없어보이는 실험인 것도 같으니까요..;;
(출처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5/57/PT05_ubt.jpeg)
앞쪽 : 재갈매기, 뒤쪽 : 작은재갈매기. 둘은 같은 지역에 살지만, 교배가 불가능며 다른 종으로 분류된다.
그 대신에 자연에서 사례를 찾아보면 고리종(ring species)라는 현상이 있는데, 고리 종의 가장 잘 알려진 예가 바로 재갈매기의 고리종 현상입니다. 아래 첨부한 그림을 보면서 설명하도록 하죠. ⑦재갈매기[Herring gull, Larus argentatus]는 대서양 연안에서 살지요. 재갈매기와 같은 곳에 서식하는 비슷한 새로, ①작은재갈매기[Lesser black-backed gull, L. fuscus]도 있습니다. 재갈매기는 등과 날개부분이 회색인 반면, 작은재갈매기는 등과 날개부분이 검은색입니다. 이 둘은 한 눈에 구별되고, 다른 종으로 분류되며, 당연히 교배도 불가능합니다.
(출처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8/8d/Ring_species_seagull.svg/532px-Ring_species_seagull.svg.png)
대서양을 건너서 북미대륙으로 건너가보면, 재갈매기와 매우 흡사해서 잘 구별하기 어려운 ⑥아메리카재갈매기[American herring gull, L. smithsonianus]가 있습니다. 유럽의 재갈매기보다 아주 아주 약간 더 깃털이 짙을 뿐이죠. 과거에는 재갈매기종의 아종으로 분류되었지만, 요즈음은 독립된 종으로 분류되는 모양이더라구요. 재미있게도, 재갈매기와 아메리카재갈매기는 교배가 가능합니다. 즉 ⑥과 ⑦은 교배가 가능합니다.
⑥아메리카재갈매기는 또한 ⑤동시베리아재갈매기[Vega Gull, L. vegae]와도 교배가 가능합니다. 이 녀석도 예전에는 재갈매기종의 한 아종으로 분류되었죠. ④Birula갈매기[Birula's Gull, L. vegae birulai]라는 아종도 있지요. 뭐 아종이니까 얘네들은 당연히 교배를 할 수 있습니다. ④Birula갈매기는 또한 ③Heuglin갈매기[Heuglin's gull, L. heuglini]와 교배가 가능합니다. 이때부터 재갈매기와 생김새가 확연히 구분이 되기 시작합니다. 색깔은 확실히 짙어졌죠.
거기에서 좀 더 서쪽으로 가보면, ②시베리아작은재갈매기[Siberian lesser black-backed gull]이 나타납니다. ③Heuglin갈매기와 교배가 가능하죠. 더 서쪽으로 돌아가서 유럽에 이르면 처음에 언급했던 ①작은재갈매기가 나옵니다. ②와 ①은 그저 지역만 다를 뿐 같은 종이죠.
솔직히 지금까지 이건 종, 저건 아종으로 분류된다는 식으로 설명했는데, 매우 혼동하기 쉬워보이는군요. 사실 분류의 여부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교배의 가능 여부만 살펴보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교배가 가능한 스펙트럼을 따라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합니다. 즉 ①-②-③-④-⑤-⑥-⑦ 이런 식의 교배 가능한 스펙트럼으로 볼 수 있죠. 각 재갈매기들은 인접한 재갈매기와는 교배가 가능하지만, 양극단인 ①과 ⑦은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지만 교배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말입니다. 간단하게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은 양상이 될 것입니다.
(출처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c/c7/Ring_species_diagram.svg/404px-Ring_species_diagram.svg.png)
아마도 재갈매기의 고리종 형성 과정도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A의 모양으로 퍼져있었겠지요. 돌연변이가 계속 일어나므로, 인접한 지역의 재갈매기들은 교배를 할 수 있지만, 양극단의 재갈매기들은 지역적 격리 때문에 서로 교배를 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돌연변이도 계속 일어나고, 재갈매기들이 고리모양으로 퍼져나가면서 결국 B를 거쳐 C에 이르는 매우 아이러니한 분포를 보이게 되었던 것이죠.
앞에서도 살짝 얘기했지만, 이런 재갈매기들을 '생식적 격리'를 기준으로 종과 아종으로 나누는 것은 매우 애매모호하고 알쏭달쏭합니다. 재갈매기들이 교배 가능한 스펙트럼을 보이니까요. 즉 종은 그 경계가 뚜렷하지가 않으며 고정된 것도 아닌 거지요.
고리종 현상은 새로운 종이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진화론의 강력한 사례입니다. 반면 "종은 불변하며 그 사이의 경계는 절대적으로 뚜렷하다"라고 주장하는 창조설 내에서 이 재미있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지가 궁금하네요.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창조론자들이 가장 먼저 대답해야할 질문은 이것들입니다.
1) 하나님은 재갈매기도 종류대로 창조했을 것입니다. 재갈매기를 몇 종류로 창조했을까요?
2) 노아의 방주에 재갈매기는 몇 쌍이 들어갔을까요?
그러니까 이 두 가지 질문만으로도 창조론자를 관광보낼 수 있는 거지요.
[출처] 창조론자 관광보내기 : 종은 고정된 것일까-고리종현상|작성자 김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