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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2012.05.27 07:26

최재천교수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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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연구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 『다윈 지능』최재천

맑스와 프로이트는 죽었으나, 여전히 살아남은 건 다윈. 그 이유는?!
다윈을 모르는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도 아닌 후진국

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에코 과학부). 한국에 다윈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가장 애쓴 학자 중의 한 명입니다. 2009년, 다윈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고,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다윈2.0>을 연재했죠. 그리고 이를 묶고 당시 싣지 못한 글까지 묶어 ‘공감의 시대를 위한 다윈의 지혜’라는 부제를 단 『다윈 지능』이 나왔습니다. 지난 3월10일,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SNS의 달인, 다윈’이라는 제목으로 최재천 교수의 특강이 열렸습니다.

지난 2009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을 꼽으라면 단연 ‘다윈’일 겁니다. 한국은 아주 덜 그랬고, 미국에선 ‘링컨’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호명됐겠지만, 다윈이 세상을 지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탄생 200주년. 1809년 2월12일 의사 로버트 웨어링 다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서양 특히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선 다윈에 관한 행사가 벌어지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참고로 같은 날, 링컨도 태어났지요.

그리고 150주년. 그 전까지 굳건하던 인류의 탄생 기원을 송두리째 바꾼 다윈 최고의 역작『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이 1859년 나왔습니다. 다윈의 탄생 200주년과『종의 기원』의 탄생 150주년. 다윈이 2009년을 지배했었던 이유였습니다.


『종의 기원』은 1859년 11월 24일 영국 런던의 존 머레이 출판사에 의해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판매용으로 찍은 1,170권의 초판은 꺼내놓기가 무섭게 당일로 몽땅 팔려 나가는 진기록을 세우며 당시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우주의 생성과 생명의 탄생이 창조주의 은총과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저절로 그리고 우연히 나타난 결과라는 주장은 그야말로 도발 그 자체였다.”(p.65)



물론 한국에서는 그렇진 못했죠. 상대적으로 다윈에 대한 관심이 적고, 다윈의 업적에 대한 인식이 얕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의 창시자 혹은 적자생존이라는 이론을 제시한 과학자, 딱 그 정도. 특히 적자생존은 경쟁 지상주의자나 시장 근본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펴기 위해 아전인수식으로 끌어들여 다윈을 욕보이기도 했죠.



그 와중에 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에코 과학부). 한국에 다윈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가장 애쓴 학자 중의 한 명입니다. 2009년, 다윈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고,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다윈2.0>을 연재했죠. 그리고 이를 묶고 당시 싣지 못한 글까지 묶어 ‘공감의 시대를 위한 다윈의 지혜’라는 부제를 단『다윈 지능』이 나왔습니다. 지난 3월10일,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SNS의 달인, 다윈’이라는 제목으로 최재천 교수의 특강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다윈이 SNS의 달인? 최 교수는 어떤 근거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들어볼까요?


위대한 과학자, 다윈

최 교수에 의하면, 다윈, 이런 위대한 사람입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1,000년, 1,000인(1,000 Years, 1,000 People)』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1000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누구인가 묻는 설문조사를 토대로 만들어졌는데, 다윈은 7위였습니다. 참고로, 1위는 구텐베르크.『오! 이것이 아이디어다』라는 책에서도 ‘진화론’은 7위였고요. 1위는 인터넷.

그는 되묻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설문조사를 하면 다윈은 몇 등을 할까요? 장담하건대, 100위 안에도 못 듭니다. 한국은 다윈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중요성을 몰라요.”


그런 한국적 상황에서 다윈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알리고 공부하기 위해 최 교수, 2005년부터 <다윈 포럼(Darwin Forum)>을 열었습니다. 포럼을 통해 다윈의 저서들을 번역하는 작업 등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 저서가 번역이 다소 매끄럽지 않은 측면이 있어서 다윈의 중요 저서를 제대로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어요. 사실 다윈 책은 번역이 힘듭니다. 끝이 길어요. 어떤 문장은 1페이지가 넘는 것도 있을 정돕니다. (번역을 끝내는 게) 2009년이 목표였는데 그렇게 못해서, (웃음) 내년에 끝내는 게 목푭니다. 그냥 번역이 아니고 제대로 이해하자는 것이 목표라 늦어지고 있습니다.”


다윈, 얼마나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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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중요성에 대해 최 교수는 거듭 강조합니다. 2006년 미국의 <찰리 로즈 쇼>, 같은 해 다윈 전집을 낸 두 명의 생물학자를 게스트로 초대, 이야기를 나눴답니다. 진행자가 물었습니다. “다윈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DNA 이중 나선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받은 바 있는 제임스 왓슨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엄마보다 더! (In my opinion, Darwin was the most important person ever lived on earth... More so than (my) Mom!)”


“일찍이 위대한 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는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젠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다른 많은 학문 영역들은 물론 우리 일상생활에도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감히 이렇게 말하련다.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 삶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고.”(p.20)



최 교수는 그 예를 더 듭니다.『왜 다윈이 중요한가』라는 책. 저자(마이클 셔머)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맑스, 프로이트, 다윈 등을 듭니다. 그러면서 맑스와 프로이트는 죽었으나, 여전히 살아남은 건 다윈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유? 맑스와 프로이트는 그 이론이 틀린 것으로 판명 났으나, 다윈은 여전히 옳기 때문이라는 거죠. 말하자면, 다윈 승!

다윈은 20대 때 비글호를 탔습니다. 3년을 예상했으나 5년(1831~1836)이 걸렸습니다. 재밌는 건, 다윈, 지질학자로 탑승했으나 내릴 때는 생물학자가 됐습니다. 우리는 보통 다윈이 항해 중 갈라파고스에서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최 교수는 그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윈의 일기를 보면 갈라파고스 부분은 짧습니다. 나중에 터득한 거죠. 배에서 내린지 1년 후인 1837년, 항해를 정리하면서 다윈은 어느 정도 파악을 했습니다. 1837년 다윈의 노트를 보면, ‘변이가 생기면서 가치치기식의 변이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그림으로 처음 표현했습니다. 이를 22년 동안 묵힌 뒤, 1859년 세상에 처음 공표했습니다.”

그리고 오해 하나 더. 다윈이『종의 기원』 발표를 늦춘 것은 (발표 후 파장이 불러올) 두려움 때문이다? 최 교수,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윈은 숨긴 게 아니었습니다.

“1844년 친구 후커에게 보낸 다윈의 편지에 종이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마치 살인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는 구절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다윈이 무서워하고 있다고 평가한 누군가의 말을 우리는 믿고 있었던 겁니다.”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한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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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에 대한 오해는 꽤 많은 편입니다. ‘은둔자 다윈’에 대한 것도 하나입니다. 다윈을 다룬 평전 가운데, 가장 제대로 된 평전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제니 브라운이 쓴 평전에 의하면, 다윈은 은둔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외출을 자주 나갔고, 집에 끊임없이 손님이 오갔다고 합니다. 웃음이 꽤 호탕해서 다윈의 자제들도 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하네요.

“다윈은 결코 소심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1만4000통의 편지. 그는 편지를 통해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했습니다. 우편배달부가 하루에 몇 차례씩 올 정도였죠. 다윈의 편지를 읽으면, 다윈이 부탁하면 그 귀찮은 일을 다 들어줬어요. 그는 편지로 세상을 부려먹은 거죠. (웃음)”

최 교수, ‘다윈은 하나의 기업’이었다고 표현합니다. 다윈은 평생 직업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의사, 장인은 영국 도자기의 대명사인 웨지우드 총수였습니다. 다윈은 돈을 굴리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죠. 아버지와 장인으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의 몇 배를 자식들에게 물려줬답니다. 재테크의 달인?

“만약 다윈이 오늘날 살고 있다면, 은둔자가 아니라 하루 종일 이메일이나 채팅, 트위터를 하면서 보낼 거예요.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자주 나가지는 못했지만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했습니다.”

다윈을 ‘SNS의 달인’이라고 말한 이유죠. 그런 다윈이 22년 동안『종의 기원』을 품고 있던 것은 긴 세월이 아니라고 최 교수는 말합니다. 대개 연구 프로젝트를 하면 20~30년을 했으니 급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1858년 월러스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그것입니다.

월러스는 늘 다윈에게 편지로 상의하던 후학이었습니다. 어느 날 날아온 월러스의 편지에 다윈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이론이 그대로 담겨 있었던 겁니다. 다윈, 난리를 쳤다는군요. 서재를 불태우라는 둥. 친구 후커와 라이얼과 상의했고, 이들의 중재로 다윈은 1859년 마침내『종의 기원』을 세상에 내놓게 된 겁니다. 월러스가 없었다면 『종의 기원』은 얼마나 더 묵혔을지 모를 일이죠. 그런데, 왜 다윈은 허둥지둥 댔을까요?

“과학에선 누가 먼저 발표했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윈이 훗날 월러스에게 쓴 편지를 보면 다윈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가 나옵니다. 1858년부터 그동안 쌓아온 원고를 정리해서 1859년 요약본을 낸 것이『종의 기원』이에요. 월러스 덕에 낸 셈이고, 책은 나오자마자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종의 기원』의 탄생 비화죠. 최 교수, 다윈은 그 당시에만 사람을 부려 먹은 게 아니고, 지금도 부려 먹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다윈이 뿌린 진화론의 거대한 자장 안에 있다는 얘기죠. 최 교수는 이것을 ‘Wikipedia’에 빗대 ‘WikiDarwinia’라고 표현합니다. Darwinism as Collective Intelligence. 다윈은『종의 기원』을 통해 모든 것에 애매모호하게 걸칠 정도로 얘기해 놨다는 겁니다. 최 교수, 이렇게 말합니다. “다윈은 온갖 것에 다 침을 발라놨어요. (웃음)”


“진화론은 이제 생물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경제학, 인류학, 심리학, 법학 등의 인문 사회 과학 분야는 물론 음악, 미술 등의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진화 심리학, 진화 게임 이론, 진화 윤리학, 다윈 의학 등은 모두 다윈이 뿌린 작은 겨자씨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화려한 이파리와 꽃들이다.”(pp.21~22)



다윈을 향한 최 교수의 구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다윈과 관련한 책을 계속 집필 중이고 출간할 계획입니다. 그는 2009년 한국일보 특집이었던 <다윈은 미래다>에서 다윈과 관련한 5명의 최고의 다윈학자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연재 당시에는 못했으나 이들에 덧붙여 12명의 다윈주의자들을 추가로 인터뷰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대해볼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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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이리 떠들어본들 우리는 다윈의 것입니다. (웃음) 모든 것이 다윈에 수렴되죠. 가장 최근, 우리가 내린 평가는 이렇습니다. 다윈 이론이 150년의 혹독한 담금질을 거쳐 세상을 지배한다. 다윈 이론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이론이 없다. 경제학도 넘어가서 뉴튼경제학도 다윈경제학으로 바뀌었다. 우리도 이젠 다윈 후진국을 탈피해야 합니다.”


“다른 학문 분야도 대체로 비슷하겠지만 다윈의 이론을 연구하는 진화학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거의 완벽하게 후진국이다. 개발 도상국도 아니고 그냥 후진국이다.”(p.9)



다윈을 우리 삶으로 받아들이는 일. 지금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다윈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세계는 더 넓어질 것 같습니다. 다윈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도 함께 살아가는 법 아닐까요? 지금 더욱 필요한, ‘호모 심비우스(공생하는 인간)’의 가능성. 어쩌면 누군가는『다윈 지능』을 읽고 삶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 교수에게 한 권의 책이 그러했듯. 자, 이제 다윈입니다.


“책 한 권이 하루아침에 인생관과 가치관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을 수 있을까? 내게는『이기적 유전자』가 그런 책이다.”(p.214)



최재천 교수에게 묻고, 최재천 교수가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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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진화론을 연구하는 학자이신데, 교회에 다니진 않으시나요?

답변

저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과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지금까지 착실하게 교회에 나가고 있어요. 물론 세례는 안 받고 다니지만요. (웃음) 저는 계속 공부합니다. 종교도 귀 기울여 공부합니다. 종교와 과학이 함께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초등학생에게 알맞은 진화론에 관한 도서를 추천해 주셨으면 합니다.

답변

아직은 초등학생에게 좋은 진화론 책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써야할 것 같은데... (웃음) 진화는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진화가 진보냐? 진화는 방향성이 없습니다. 내가 노력한다고 다음 세대가 나보다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어요. 라마르크는 노력하면 된다고 했지만. 다음 세대 환경을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 지구 역사는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노력할 수는 있지만 노력과 결과가 진화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진보라는 말 속에는 목적 또는 목표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진화에는 목적성이 없다.”(p.68)

질문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성립될 수가 없어요. 틀린 이론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 한 구석엔 라마르크가 맞기를 바랍니다. 다윈에 기대면, 진화가 너무 느리거든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조금 적용되면 좀 더 진화를 알맞게 설명할 수가 있어요. 최근 후성유전학이 나오면서 라마르크 이론의 효과를 보여주는 유전 메커니즘이 발견되고는 있습니다.

질문

호모 심비우스에 기대어 SNS를 이야기해 주신다면요?

답변

SNS가 때론 사람을 죽이는 신형 무기가 됐어요. 그렇다고 힘을 합쳐 (SNS를) 없애자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겪는 과정이고 그런 과정을 거쳐 세련돼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경거망동 하는 사람들은 (SNS를) 응징하는 방법을 찾을 겁니다.

개미의 세계를 보면, 일개미의 반란 행위가 꽤 많은데, 이를 여왕개미가 찾는 게 아니라 서로 찾습니다. 우리 사회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SNS도 세련되어 지면서 나름의 메커니즘을 만들 겁니다. 세월이 가면 험한 일이 줄어들도록 만들 거예요.

저는 호모 심비우스 정신이 우리 마음에서 조금씩 진화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나가수 시즌1>를 보면, 한 사람이 떨어진다고 좋아하지 않고 다 같이 슬픔을 나눠요. 그게 진화요,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봤습니다. <나가수 시즌1>가 1명만 살아남았다면, 따듯한 프로그램이 됐을까요? 1명이 떨어지니까, 6명이 다 감싸 안아 주잖아요. SNS에서도 조만간 서로를 보살펴주는 메커니즘이 만들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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