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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독교인들이 화석의 순서와 지질학적 발견이 "진화론"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읍니다. 화석의 발굴과 지질학은진화론과는 전혀 상관없이 발전하였으며, 진화론이 등장하기 전까지모든 지질학적 시대와 화석의 시대분류가 완료되어 있었읍니다. 화석들의분류와 시대적 배열은 "진화"라는 개념과는 관계없이 순수한 지층의시간적 순서와 분류학적 차이만으로 이루어졌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화석을 지질학에 이용하는 방법자체가 생물학과는 전혀관계없는 영국의 토목기사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다윈 이전의 지질학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읍니다.

창조론자들이 지질학을 "진화론"이라 비난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허황되고잘못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 1611-1654년까지: 최초의 지질학은 창조론

서양의 상당수의 학문적 기원이 그러하듯이 지질학의 시작은 성경입니다.

1611년에 어셔 주교는 성경에 근거하여 지구의 연대가 기원전 4004년이라고하였으며, 우주의 시작은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이라고 결론지었읍니다.

이 연대기는 당시의 공인된 여러 판본의 KJV성경에 주석으로 실려있읍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연대기에 근거한 지구의 연대를 처음부터 고려하였으며,항상 모든 지질학적 근거들을 창세기, 특히 노아의 대홍수와 연관지으려는시도를 계속하였읍니다. 젊은 지구론자들이 주장하는 노아의 홍수는 새로운패러다임의 과학이 아니라 과학의 초창기부터 종교적 이유에 의해 고려되어온 가장 오래된 패러다임입니다. 다만 과학의 발전에 의해 그것이 사실이아님이 밝혀진 것 뿐입니다.

 

2. 1669년: 니콜라스 스테노

1669년에 니콜라스 스테노는 지층의 구조를 관찰하여 지질학의 가장 기본이되는 원리를 세웁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수평의 원리: 모든 지층은 생성당시에는 수평으로 형성된다.

중첩의 원리: 아랫쪽의 지층은 오래된 것이고, 윗쪽의 지층은 더 나중에 형성된 것이다.

지질학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분석작업이 이 때부터 시작됩니다.

지층에서 나오는 화석이 고대 생물의 흔적이라는 인식이 스테노로 하여금지층을 관찰하고 그 과학적 원리를 깨닫게 한 기본적 배경이 됩니다.

이때부터 광부와 지층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은 화석을 지층의 구조를 이해하는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읍니다. 1600년대말부터 1700년대까지 스테노의원리를 응용한 작업이 계속되었지만, 1800년대 초에 윌리엄 스미스가알아내기까지는 누구도 화석의 정확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읍니다.

 

3. 1795년: 지질학의 아버지 - 제임스 허튼

1785년에 "지구의 이론"이라는 책을 출간한 제임스 허튼은 지질학의 아버지로불리웁니다. 1795년에 유명한 "동일과정의 원리"라는 개념을 지질학에도입합니다. 이것은 지질과정이 그 시간적 빈도에 있어서나, 규모에 있어서일정한 단계를 밟아왔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개념이 옳다면 우리는 현재로부터 과거를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읍니다. 따라서 이 원리는기본적으로 "현재는 과거의 열쇠이다"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읍니다.

이미 이때에는 지구의 나이가 인간의 상상을 넘어설 만큼 오래된 것이며기원전 4000년이 지구의 기원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이미 깨닫고 있었읍니다.

 

4. 1811년: 윌리엄 "스트라타(지층)" 스미스

지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가장 위대한 과학적 사실중의 하나가 영국의토목기사에 의해 발견됩니다.

생물학적 승계의 원칙: 지층에 나타나는 화석은 생물학적 생존순서를 지킨다.

윌리엄 스미스는 1791년에서 1799년 사이에 리처드슨 목사의 도움을 받아새로운 지질조사 방법을 개발합니다. 그는 석탄과 지하수를 개발하기 위해시추조사를 했으며 광산에서는 지하층의 지질을 연구하였읍니다. 이들을통해 스미스는 점차 영국의 각 지방에서 산출된 화석에 주목하게 됩니다.

산업의 발달로 석탄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영국의회는 서머셋 운하공사를승인하였읍니다. 이때 스미스는 이 운하의 최적지가 어딘가를 조사하도록위탁받습니다. 이때까지의 지층의 조사방법은 주로 지층의 색깔, 재질등을사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 특징은 모든 지층들에서 비슷한양상으로 되풀이됩니다. 더구나 지역이 달라지면 동일한 시대의 지층이라도다른 형태를 보일 수 있읍니다.

이 조사에서 그가 알게된 사실은 수많은 지층들이 두께와 성질은 곳에 따라변하지만 화석군은 그들의 일반적인 성질을 유지하며 그가 조사한전지역에 걸쳐 그 화석산출의 순서가 동일하다는 것이었읍니다. 그는암석의 성질이 곳에 따라 점차로 변함에도 불구하고 화석에 의해서지층의 순서를 판단할 수 있었읍니다.

 

스미스는 화석자료를 가지고 깊이 매몰된 지층의 성질과 심도를 정확하게예측할 수 있었고 주요 지층들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읍니다.

이러한 화석들을 비교하고 여러 마일 떨어져 있는 지층의 순서를 대비할 수있었읍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시추조사, 광산과 그 밖의 발굴장소 등에서검증되었읍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지표에서의 관찰로 지하의 암층을 그두께와 깊이까지도 상세히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탄층과그 밖의 경제적인 암석의 심도 등을 사전에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읍니다.

시추하기 전의 이 예측방법은 현재의 지질탐사에서도 시행되고 있읍니다.

스미스는 실제로 생물학적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화석들을 분류하고명명하지 못했읍니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단순한 기재에 그쳤읍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조직적이어서 그의 업적은 후에 지하자원의 개발과도로와 수로를 개발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었읍니다.

스미스는 학자가 아니었읍니다. 그리고 대륙의 지질학자들이 실시한야외연구나 그들의 의견에 그가 영향을 받은 적도 없읍니다. 그는1769년에 태어났고, 같은 해에 프랑스의 위대한 고생물학자인 퀴비에도태어났지만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었읍니다.

스미스는 조심스러운 태도와 그 자신의 바쁜 생활 때문에, 화석 내용을 근거로 작성한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지질도를 오랫동안 출판하지 못합니다.

1815년에 와서야 그의 지질시대에 따른 조사방법이 알려지고 전 유럽의지질학자들이 이를 검토하게 됩니다.

스미스의 지질도가 출간된지 수년 후 리처드슨 목사의 도움으로 각 지층의화석일람표가 출간됩니다. 이로써 국제적인 층서학 분야에 화석이지층의 위치를 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널리 주목을 받게 됩니다.

 

4. 1800년대초: 퀴비에 - 격변론의 등장

1800년대초 프랑스의 고생물학자인 퀴비에는 화석들이 급격한 변화를보이고 있다는 것은 신에 의해 중간중간의 전지구적 격변들에 의해 모든 종이멸종하고 새로운 생물들이 창조된 것이라는 "격변론"을 내세웁니다.

(단, 한번의 격변이 아님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그러나 이것은 제임스 허튼, 라이엘등의 동일과정론자에 의해 맹렬한반격을 받고 사장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지질학적인 격변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지질학적증거들도 동일과정만을 지지했던 것입니다. 특히 노아의 홍수같은 전세계적홍수는 지질학적 지식의 축적에 따라 철저히 부정되었읍니다.

그러나 이 격변론은 1970년대에들어서 공룡의 멸종이 외계로부터의 거대한운석이나 혜성의 충돌에 의한 것이라는 새로운 가설이 등장하면서부분적이나마 부활하게 됩니다. 현대의 진화론은 이제는 외계로부터의운석의 충돌이라는 전지구적 격변을 정설로서 포함하고 있읍니다.

창조론자인 헨리 모리스가 자신의 이론에 "격변론", 진화론에 "동일과정론"이란 라벨을 사용한 것은 과거 지질학적 논쟁중의 멋있어 보이는 단어를제멋데로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의 대홍수이론은 다윈 이전인1800년대초에 이미 충분이 부정된 단순한 사이비 과학에 불과합니다.

 

5. 1830: 찰스 라이엘 - 지질학의 원리

지질시대표를 만드는 데 크게 공헌한 사라은 1830년 "지질학의 원리"를 저술한찰스 라이엘입니다. 그 후 수년간 그는 지질계통을 일률적으로 분류하기 위해지구 역사의 중심 체계를 발달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에 관심을기울였읍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라이엘은 전세계적인 계통수립에 필요한증거들을 많이 종합하였읍니다. 세계지도급 지질학자들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명성과 성공적인 저술은 지질시대 계통을영국의 발명으로 인식시켜놓았읍니다.

라이엘은 시실리, 이탈리아 북부 및 프랑스 등지의 제3계라고 불리는 지층에서매우 많은 화석들을 채집하여 영국으로 운반하였읍니다. 이 '제3계'라는명칭은 보다 치밀하게 고화된 '제2계'(중생대) 암석위에 놓이면서 흔히부드럽고 얇은 퇴적물이나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석을 매우 많이포함하는 층이라는 사실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화석이 거의 보이지 않고주로 화성암과 변성암으로 구성된 기반암을 '제1계'로 취급하였읍니다.

파리의 생물학자이며 유럽 연체동물 연구의 지도급 권위자인 데쉐는1820년대 후반과 1830년대 초기에 라이엘과 함께 제3기 화석을 연구하였읍니다.

라이엘과 데쉐는 제3기 연체동물 화석군집의 특징을 순서있게 기록함으로써다음 사실들을 보여주었읍니다. 즉 화석군집의 층서학적 위치와 현생종과의유사성 사이에는 단순한 수학적 관계가 있을 뿐이며, 층서학적 위치가 상위인화석군집일수록 현생군집과의 유사성이 높다는 사실입니다.

두 학자는 제3기층을 세분하고 대비하는 새로운 안을 고안하였읍니다. 즉 각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종과 현생종의 비율에 의해서 제3기층을나누고 대비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뒤에 다른 학자들에 의해서 수정되고 보다 세밀하게되었지만 신생대 후반에 점차로 현생종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그들의일반적인 결론은 틀림없는 것임이 모든 검증에서 밝혀집니다.

표: 라이엘의 지층구분세 아직 생존하는 연체동물 종의 비율현세(홀로세) 100%플라이스토세 90%플라이오세 33~50%마이오세 18%에오세 3.5%

몇년 후 고생물학자들은 에오세 상부와 마이오세 하부에서 제6의 세인올리고세를 그리고 에오세 하부에서 팔레오세를 제7의 '세'로 분리시켰읍니다.

제3기 연체동물에 관한 이 연구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화석의시대적 순서를 처음으로 엄격하게 검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옛 생물군이 새로운 생물군에 의해 점차적으로 대치된다는 독립적인 확증이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보다 정교한 수없이 많은 연구가 화석의 연속성에대한 진화론적 성질과 라이엘의 암석시대 결정방법을 확인해 주고 있읍니다.

 

 

5. 화석에 의한 지질시대 구분(화석 달력)이 발전해온 과정

-1790년-- -----1840년----- ----현 재-----

홍수 이후 충적층 | 현세 | 홍수 |신 플라이스토세|신 | | 플라이오세 |생 플라이오세 |생제3기 마이오세 | 마이오세 | |대 올리고세 |대 에오세 | 에오세 | | 팔레오세 |

백악기 |중 백악기 |중제2기 쥬라기 |생 쥬라기 |생 트라이아스기|대 트라이아스기|대

페름기 | 페름기 | 석탄기 |고 석탄기 |고천이대 데본기 |생 데본기 |생 실루리아기 |대 실루리아기 |대 원시기 | 오르도비스기| | 캄브리아기 |

제1기 제1기 |무생대 선캄브리아 시대

 

(1790년대만 해도 충적층을 홍수에 의한 것으로 보았음에 주목하십시오.)

 

6. 다윈 이전의 고생물학

* 다음은 뉴엘의 저서로부터 직접 인용합니다.

 

1840년대에 출간된 대학 교재로는 픽테의 것이 유명하다. 이것과 그 밖의다른 저술을 보면 그 당시 진화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했지만,화석기록의 현저한 특징에 관해서는 이미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었다.

경험에 의해 도달된 이러한 결론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1. 독특한 화석군집은 주요 층서단위와 지질시대 구분을 규정한다.

고시대의 군집은 신시대의 군집에 의해 계속해서 조금씩 대체된다.

비록 일부 종은 오랫동안 잔존하는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일단특수한 화석군집으로 계통에 나타난 것은 다시 출현하지 않는다.

 

2. 화석과 그와 비교되는 현생 생물들 사이의 차이는 지질시대가 오래일수록커진다.

 

3. 바다 생물의 군집대는 흔히 육상동물과 식물, 탄층, 고기, 토양, 그 밖의증거가 되는 것들을 포함하는 지층 사이에 끼여서 나타난다. 이러한 것들이많이 반복되어 관찰됨은 바다가 수없이 육지로 올라왔음을 가리키며, 이러한현상에 의해 해성층, 담수성층 및 기수성층등이 교대로 발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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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 퀴비에(격변론의 제안자) 및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이 기록한 위의층서의 내용들은 후대 지질학자들에 의해서 실제로 조사 확인됩니다.

이들 중 대부분이 성서의 내용으로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그들 자신의 자연 관찰로 알게되었읍니다. 화석에 근거한 지질 시대의체계는 지질학자가 생명의 역사에 관해 생각하기 전에 그 기초작업이완성된 것입니다.

 

7. 참고 그림

*자료실에 올려 놓겠읍니다. "지질학"이라는 단어를 검색해서찾으시면 다운 받으실 수 있읍니다.

그림1은 삼엽충의 종류의분류로 얼마나 정밀하게 지질학적 시대를 구분할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림2는 선캄브리아시대부터의 지층이존재하는 캔자스 주의 단면도입니다.

 

그림1. 북미 서부에서 수립된 캄브리아기의 삼엽충대. 이들은 d'Orbigny의 계를 나타내며 화석의 산출범위(수직범위)가 중복되는 경향이 있다.[오클라오마 지질조사소의 Slitt의 그림을 단순화한 것임]

그림2. 수천개의 심부 시추 조사로 확인된 캔자스주 지하의 지층들.

이들은 창조론들의 설명처럼 단 한번에 쌓인 지층이 아니고, 수없이많은 육성층과 해성층이 교대로 나타난다.

[Kansas State Geol, Surv.]

 

8. 결론

 

지질학의 발달과정과 대홍수이론의 붕괴, 화석의 변화와 지질학적 관계의중요성, 그리고 지질학적 동일과정론과 격변론의 등장, 시대 구분의타당성등을 살펴보았읍니다. 모두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되기 이전의업적들이며 진화론에 의해 조작된 것이 아니라, 진화론이 등장하게 되는기초적 배경이 된 것입니다. 현대에 이르러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은이러한 과거의 상대시간적 지질학 분석방법이 완전히 타당한 것이었음을매우 정확하고 독립적인 방법으로 증명해 주었읍니다. 마지막으로진짜 과학자와 사이비 과학자의 지질학의 업적에 대한 전반적 평가를들어보도록 하겠읍니다.

 

현재까지 수많은 종류의 화석들에 근거하여 상대적인 지질시대가 수립되어 왔다. 화석들이 지질시대에 나타내는 위치는 전세계 지질학자들의 공동작업으로 확실해지고 있다. 이는 연역적으로 유도된 설이 아니고 지층에서 나오는 화석들을 체계있게 연구하고 지질시대에서의 위치를 주의깊게 결정하는 등 고통과 끈기 있는 발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 1949. 고생물학자인 Carl O. Dunbar의 '지사학'

'현대 공론'은 수십억년이라는 믿기 어려운 시간속에서 생물들이 진화해 왔다고 하면서, 그 증거로서 묘지에 퇴적된 화석들을 조작해서 제시하고 있다. 이 이상한 생각을 전세계 대부분의 학교에서 과학적인 사실로 가르치고 있다.

-- 헨리 모리스와 죤 위트콤 2세의 '멸망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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