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이란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아마 대학교 2학년때쯤인것 같다.
오늘 문든 켠 티비에 드라마를 보며 희망고문이란 아련한 단어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희망고문이란 뜻은 미안해란 수필집에 일부를 인용할까 한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같이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절망을 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둘 사이에 애인으로서는 전혀 희망이 없음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작은 희망하나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계속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있기때문이다.
술에 취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라고 전화를 한다던지
사귈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과 그냥 괜찮다는 이유만으로 데이트를 한다던지
싫어서 헤어지면서 이유는 집안이 어려워서, 옛애인을 못잊어서, 혹은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말을 한다던지..
하는 행동들은 모두 상대방에게 희망을 주는 행위들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은 그 사람 가슴에 안타까움과 속상함. 집착등을 남겨 큰 상처를 줄수 있다.
이런 행위들을 난 희망고문이라고 부른다.
당신이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는 희망을 주지 않음으로써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 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니까
...수필집 미안해 중에서....
좀전에 이글을 남겼는데....저장이 안됬다.
같은 것에 대해 똑같은 내용에 글을 다시 쓴다는 것은 참으로 힘빠지는 일이다.
하지만 아주 조금 한발짝 뒤에서 생각할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과연 나는
그사람이 더이상 나에게 그 어떤 미소도 보져주지 않길 바랄까?
한때 나에겐 나를 보며 미소짖는 그사람의 미소가 희망고문이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때론 그 미소가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님도 알기에
그사람의 모습 자체를 외면하려고 했던 적도 있지만
나의 눈은 나의 마음과 달리 항상 그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이젠 어쩜 알수 있을것 같기도 하다.
때론 사랑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아픔일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