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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dongascience.com/PHP/NewsView.php?kisaid=20120924200002339541&classcode=01



최근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동물원이 공개한, 라이거 암컷이 사자 수컷과 짝짓기를 해 새끼를 낳아 화제다. 사자 수컷과 호랑이 암컷이 교배해 낳은 잡종인 라이거(liger)는 수컷인 사자(lion)를 앞에, 암컷인 호랑이(tiger)를 뒤에 넣어 만든 말이다. 참고로 호랑이 수컷과 사자 암컷 사이에 나온 잡종은 타이곤(tigon) 또는 타이글론(tiglon)이라고 한다.

이번 출산이 화제가 된 건 지금까지 서로 다른 종인 사자와 호랑이 사이에 태어난 잡종인 라이거나 타이곤은 새끼를 낳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 사자와 호랑이가 같은 종이 아닌 이유도 종에 대한 정의인 ‘생식력이 있는 자손을 낳아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이거 암컷이 새끼를 낳았으니 생물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수사자+암라이거=라일라이거
이번에 태어난 새끼는 라일라이거(liliger)라고 부르는데 수사자와 암라이거 사이의 잡종임을 뜻한다. 언론에서는 이번에 태어난 새끼 ‘키아라(Kiara)’가 최초의 라일라이거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1943년 독일 헬라브룬 동물원에서 라일라이거가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타이곤의 경우도 새끼를 낳은 예가 있다. 1971년 인도의 알리포어 동물원에서 태어난 암타이곤 ‘루드라니’는 수사자와 교배해 평생 새끼를 7마리나 낳았다(역시 같은 방식으로 이름을 지어 라이타이곤(litigon)이라고 부른다). 1978년 태어난 암타이곤 ‘노엘’은 수호랑이와 교배해 타이타이곤(titigon) ‘나다니엘’을 낳았다. 나다니엘은 호랑이에 가까워 수컷이었지만 사자 같은 갈기가 없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다.

그나마 새끼를 낳은 라이거와 타이곤은 모두 암컷이다. 수컷은 완전 불임인데 무정자증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이종간 잡종인데 왜 암컷은 드물게나마 번식을 할 수 있는 반면 수컷은 아예 불능일까.

●잡종 수컷은 비실비실

수사자와 암호랑이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거 암수. 둘 다 불임으로 알려져 있지만 암컷의 경우 드물게 새끼를 낳는다. 라이거는 고양이과 동물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다. 사진 제공 위키피디아


“두 이종 동물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 가운데 한쪽 성(sex)이 없거나 드물거나 불임일 경우 그 성은 이형염색체배우자 성이다.”

영국의 저명한 유전학자 존 홀데인은 1922년 ‘유전학저널’에 발표한 한 논문에서 위와 같이 쓰고 있는데 이 관찰은 오늘날 ‘홀데인 법칙(Haldane's rule)’으로 불린다. 위 문장에 나오는 전문어 ‘이형염색체배우자 성(heterogametic sex)’는 성염색체가 다른 성을 뜻한다. 포유류의 경우 성염색체는 암컷이 XX, 수컷이 XY이므로 수컷이 이형염색체배우자 성이다.

라이거와 타이곤 모두 수컷이 불임이므로 홀데인 법칙에 잘 들어맞는다. 홀데인 법칙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일어나는가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다.

X염색체가 이종의 Y염색체를 방해한다는 설도 있고 이종간 X염색체와 상염색체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설도 있다. 또 빠른 진화로 이종간의 X염색체가 많이 달라져 모계나 부계 가운데 하나의 X염색체가 완전히 결핍된 잡종 수컷이 생식력을 잃는다는 가설도 있다. 아무튼 잡종은 단순히 두 종의 중간인 건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예가 라이거와 타이곤의 차이다. 얼핏 생각하면 둘 다 사자와 호랑이가 반반씩 섞였으므로 비슷해야 할 것 같은데 서로 꽤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덩치로 라이거는 고양이과 동물 가운데 가장 크게 자라 몸무게가 400kg을 넘기도 한다. 반면 타이곤은 200kg도 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유전체각인(genomic imprinting)’ 때문이다. 유전체각인은 어떤 유전자가 부계인가 모계인가에 따라 발현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암사자는 여러 마리 수사자와 교미를 하기 때문에 수사자의 입장에서는 암사자 자궁에서 자기 새끼가 더 잘 자라는 게 유리하다. 따라서 부계에서 성장촉진 유전자가 발현된다. 반면 암사자의 입장에서는 애비가 누구라도 새끼를 많이 낳는 게 좋으므로 모계에서 성장억제 유전자가 발현된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뤄 적당한 크기의 새끼가 태어난다. 반면 암호랑이는 수호랑이 한 마리와 교미를 하기 때문에 이런 신경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

결국 수사자와 암호랑이가 만나 태어난 라이거는 부계의 성장촉진 유전자가 고삐가 풀려 이런 엄청난 덩치로 자라는 것이다. 반면 수호랑이와 암사자 사이에서 태어난 타이곤은 모계의 성장억제 유전자 때문에 덩치가 왜소하다. 그런데 사자와 호랑이는 비교적 최근에 갈라졌고 염색체 개수도 38개(19쌍)로 똑같은데 그 사이의 잡종이 이렇게 드물게 새끼를 낳거나 아예 불임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978년 수호랑이와 암사자 사이에서 태어난 타이곤 ‘노엘’. 사진 제공 Shambala Preserve

1983년 시베리아호랑이 수컷과 타이곤 노엘 사이에서 태어난 타이타이곤 ‘나다니엘’. 8, 9살 때 암으로 죽었고 뒤이어 노엘도 암으로 죽었다. 이종간 잡종은 유전자가 취약해 수명이 짧다. 사진 제공 Shambala Preserve


●염색체 재배열로 감수분열 못해

이종간 잡종의 생식력에 대한 연구는 다른 동물을 대상으로 많이 진행됐다. 바로 말과 당나귀 사이에 태어난 노새(암말과 수탕나귀)와 버새(암탕나귀와 수말)가 그 주인공이다. 노새와 버새 역시 불임이라고 알려졌지만 라이거와 타이곤과 마찬가지로 암컷은 드물게 새끼를 낳는다. 수컷은 불임으로 역시 홀데인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다.

배수체(2n)에서 반수체(n)인 생식세포(난자와 정자)를 만드는 감수분열 과정. 감수분열 초기 상동염색체가 나란히 배열해야 하는데 이종간 잡종에서는 많은 경우 이 단계에서 문제가 생겨 정상 난자를 만들지 못한다(b). 자료 제공 tok resource


말과 당나귀는 약 200만 년 전 공동조상으로부터 갈라져 각자 진화해온 것으로 보이는데 염색체 개수가 말은 64개(32쌍), 당나귀는 62개(31쌍)다. 따라서 잡종인 노새나 버새는 63개다. 말 염색체가 32쌍으로 당나귀 보다 한 쌍 더 많지만 무에서 새로 만들어진 건 아니다. 물론 당나귀에서도 염색체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게 아니다. 어느 순간 당나귀 조상에서 염색체 두 개가 하나로 합쳐진 결과다. 즉 당나귀의 1번 염색체는 말의 4번 염색체와 31번 염색체가 합쳐진 것이다.

이 밖에도 둘은 각자 진화의 길을 걸으면서 염색체 여러 곳에서 재배열이 일어났다. 그 결과 한 염색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다른 염색체에 붙기도 하고 같은 염색체 내에서도 자리바꿈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영국과 미국의 연구자들은 이종간 염색체에서 상응하는 위치를 찾아주는 ‘염색체 페인팅’이라는 기법을 이용해 말과 당나귀의 염색체가 서로 어떤 관계를 보이는가를 밝혔다. 많은 자리는 그대로 보존돼 있었지만 염색체가 쪼개진 게 6곳, 합쳐진 게 10곳, 순서가 뒤집힌 게 최소 2곳이었다. 

이런 염색체 구조의 변화는 잡종 불임성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인다. 즉 동물이 생식력이 있으려면 먼저 생식세포를 만드는 감수분열이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잡종은 부계와 모계로부터 각각 한 벌씩 받은 염색체 가운데 일부가 서로 다르게 재배치돼 감수분열 과정에서 짝(상동염색체)을 찾지 못해 생식세포를 만드는데 실패하는 것으로 보인다. 감수분열이 일어나려면 먼저 DNA가 복제된 뒤 쌍으로 있는 염색체들이 서로 짝을 만나 나란히 정렬해야 한다.

잡종 암컷이 드물게 새끼를 낳는 건 부계와 모계의 염색체 구조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상동염색체에 해당하는 염색체들이 나란히 정렬하는데 성공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말과 당나귀의 경우 구조변화가 거의 없어 상동염색체가 무난히 정렬할 수 있는 게 17건이지만 나머지는 재배열 때문에 염색체 3개가 정렬해야 하는 경우가 6건, 5개가 정렬해야 하는 게 1건, 6개가 정렬해야 하는 게 1건이다. 옆의 그림에서처럼 이렇게 정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은 생식세포를 만드는데 실패하는 것이다.

노새와 버새도 드물게 암컷이 새끼를 낳는다. 이런 일은 감수분열 과정에서 운 좋게 염색체가 제 짝을 찾아 배열해 정상 난자를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암노새의 감수분열 과정에서 재배열된 염색체가 짝을 찾아 정렬해야 하는 조합으로 염색체 6개가 만나야 하는 경우도 있다(맨 왼쪽). 검은색이 부계인 당나귀 염색체이고 회색이 모계인 말 염색체다. 숫자는 염색체 번호다. 라이거나 타이곤의 경우도 비슷할 것이다. 자료 제공 ‘염색체 연구’


사자와 호랑이의 경우도 비록 염색체 수는 19쌍으로 똑 같지만 각자 진화하면서 재배치가 여러 곳에서 일어나 라이거나 타이온은 감수분열시 염색체가 제대로 짝을 찾는 경우가 드물었을 것이다. 이번에 태어난 라일라이거 ‘키아라’는 어미인 라이거에서 감수분열이 제대로 이뤄져 정상 난자가 만들어진 정말 운 좋은 경우일 것이다. 이런 행운이 계속 이어져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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